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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아침에 / 박노해 새해에는 조금 더 침묵해야겠다눈 내린 대지에 선 벌거벗은 나무들처럼 새해에는 조금 더 정직해야겠다눈보라가 닦아놓은 시린 겨울 하늘처럼 그 많은 말들과 그 많은기대로세상에 새기려 한 대문자들은눈송이처럼 바닥에 떨어져 내려도보라 여기 흰 설원의 지평 위에새 아침의 햇살이 밝아오지 않은가 눈물조차 얼어버린 가난한 마음마다새 아침의 태양 하나 품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세우려 한 빛나는 대문자들은내 안에 새겨온 빛의 글자로 쓰여지는 것이니  산울림 사진여행님 사진새해 새아침에 희망의 무게만큼 곧은 발자국 새기며다시, 흰 설원의 아침 햇살로 걸어가야겠다 2025. 1. 15.
살다가 가끔은 뒤돌아보자 - 도종환 살다가 가끔은 흐린 거울을 다시 닦으며 제 얼굴을돌아보아야 합니다. 마음도 그렇게 오래 닦지 않고팽개쳐둔 거울처럼 먼지가 끼어 있기도 할 것입니다. 오래 갈지 않고 버려둔 묵정밭처럼 마음도 어느새 그렇게 잡초가 무성한 폐원이 되어 있기도 할 것입니다.우리들은 너무 앞만 보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우리들은 너무 달려오기만 해온 것은 아닐까요. 우리들은 너무나 급히 가기만 하다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치달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끝은 어디일까요언제쯤 우리들은 가다가 걸음을 멈추어 쉬고 물 한모금을 나누어 마실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들은 계산 없는 웃음으로 담배 한 개비를 나누어 피며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서로를 억압하지 않으며 서로의 것을 빼앗아 가지려고 하지 않으며 이기주의의 벽을 허물.. 2025. 1. 9.
설 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어름짱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파릇한 미나리 싹이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오늘 아침따뜻한 한 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던 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한 해가 지고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고운 이빨을 보듯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2024. 12. 31.
12월의 독백 / 오광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를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며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아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2024.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