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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의 꿈 - 류시화 바람부는 날의 꿈 / 류시화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 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 가를 보아라 2023. 11. 22.
나른한 오후 / 초당 김용자 나른한 오후 / 초당 김용자 더위에 지친 산골 마을이 휴식에 들어간 나른한 오후 산 그늘에 몸을 누이고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다 느린 리듬을 타고 흐느적 거리는 고추 잠자리 멀리 산봉리에 걸터 앉아 수다를 떨던 구름도 휴식에 들어 간 듯 닭장을 짓던 옆집 아저씨의 망치 소리만 앞산에 부딛쳐 툇마루 밑에 졸던 강아지 놀라 귀를 탈탈 턴다 "Joe Dassin - Et si tu n'existais pas" 2023. 11. 18.
가을의 단상-비우기 가을의 단상 – 비우기 새파랗고 떫은 시절도 있었다 병아리 깃털처럼 노랗던 햇살에 기댄 봄 펄펄 끓는 용광로 뜨거웠던 여름날의 열기 홍시는 말랑하고 잎은 고운 결로 물들었다 모두 비어내어 긴 동면을 준비하는 등 굽은 감나무 곱게 물들던 이파리들 미련 없이 흙으로 돌려 보낸다 감 잎 하나 주워 투명한 가을하늘에 비춰본다 그 동안 나는 어떤 빛깔의 이파리를 직조했을까 희미한 빛으로 짠 수북한 이파리들 초가지붕 위에 열린 하얀 박처럼 소박한 빗자루로 모두 비워내고 감 잎 닮은 고운 내 가을의 잎 차곡차곡 쌓으며 하무뭇한 하얀 겨울을 기다린다 황영이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2023. 11. 14.
가을 그리고 초 겨울의 문턱에서 - 가을 그리고 초겨울의 문턱에서 - 가을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가득 채워졌던 산과 들도 애써 수고한 손길에게 모두 되돌려주고 허허롭게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이 된다 붉은 단풍으로 아름답던 나무들 낙엽 우수수 털어내고 자신의 발치에 누워 침묵하는 겨울맞을 준비를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툭툭 떨어지고 털리는 소리로 바쁜 계절 떨쳐버릴 것 다 털고 선 나무들 풍상에 시달린 만큼 덤덤하게 서서 푸른 하늘만 바라본다 모두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계절 가을은 자꾸 저물어 가는데 찬바람 부는 초겨울의 문턱에 서서 계절이 우리에게 남기고 가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 좋은글 중에서 - 2023.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