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1일은 '빼빼로 데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날은 17번째 맞는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 숫자 11의 십(十)과 일(一)을 합하면 농업과 생명의 근원인 흙(土)이 되고, 11월11일은 '土월 土일'이 된다고 해 농업인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추수를 마치고 난 뒤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뜻과 이런 행사를 통해 농업의 위상을 높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땅을 일구는 이들의 긍지를 높이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현재 우리 농업은 자유무역협정(FTA), 이상기상, 국제곡물가격 급등, 원자재 가격 생산비 부담 가중 등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놓여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수입한 농축산물 규모는 332억 달러. 그러나 수출액은 77억 달러에 그쳐 무역적자가 255억 달러에 달했다. 농축산물 수입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는데, 이는 곡물 자급률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지난해 쌀 자급률은 2010년 104.6%에서 21.6%포인트 감소한 83%에 머물렀다. 쌀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 역시 하락하는 추세여서 지난해 곡물 자급률은 22.6%에 그쳤다. 주요 선진국의 곡물 자급률이 100%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안에서도 곡물 자급률이 하위권에 속하는 셈이다.
최근엔 이상기후 현상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빠르게 치솟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 인상은 곡물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에게 치명적이다. 곡물 수출국이 곡물 수출량을 줄이거나, 곡물 수출가격을 높이면 곡물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에 응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량안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 식량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국에 맡겨놓는 것과 다름없다. 생명 줄인 농업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농업과 농업인에 관해 너무 무관심하다. 일 년에 하루 있는 농업인의 날은 빼빼로 데이라는 상술에 치여 달력 속에만 있는, '박제된 기념일'이 돼버렸다. 보릿고개를 벗어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농업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기 때문이다. 주린 배를 채우던 보리개떡은 별미가 돼 버린 지 오래고, 하루 세 끼 밥에 담긴 의미를 곱씹는 이도 드물다. 먹을거리에 관한 소중함마저 잊어버린 탓에 전국적으로 매일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1만5,000톤에 달한다. 이로 인해 낭비되는 식량자원의 연간 경제적 가치는 20조원이다.
농업인의 날 하루라도 식탁에 올라온 밥과 찬을 짓기 위해 구슬땀 흘린 농부의 손길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3농(三農)', 즉 농민들이 편하게 농사를 짓도록 하는 '편농'(便農), 농사로 이문이 남게 하는 '후농'(厚農), 농업의 지위를 높여 주자는 '상농'(上農)을 주창했다. 그는 하늘ㆍ땅ㆍ사람 3재가 어울려 지탱하는 생명산업이 없이는 도시 민생도, 나라 주권도, 국토 환경 보전도 유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만큼 농업이 중요하단 뜻이다.
농업은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차질 없이 공급할 뿐만 아니라, 환경생태보전·전통문화보전 등 다양한 측면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 한 국가의 경제발전은 안정적인 농업 기반과 식량자급의 바탕 위에서라야 가능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산 선생의 말처럼, 농업의 산업적ㆍ공익적 측면을 고려해 농업이 갖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곡물자급률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식량안보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는 오늘날, 농업인의 날을 계기로 농업이 국민경제의 뿌리임을 인식하고,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의 소중함에 대해 알아갔으면 한다.
농부가 행복해야 농업이 살고, 농업이 잘 돼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