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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 반칠환

by 이첨지님 2024. 6. 17.

한 평 생 - /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 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 오면 하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재미있고 해학적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

하루를 살았건 천 년을 살았건

한생명은 같은 한평생이다.

 

하루살이는 시궁창에서 태어나

하루를 살았지만 제 몫을 다하고 갔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간다고 외쳤다니,

그 삶은 즐겁고 행복한 삶 이었을 것이다.

 

매미는 7년을 넘게 땅 속에서 굼벵이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7일을 살고 가지만,

매미 또한 7일 동안에 나름 고매한 득음도 있었고,

깨달음의 지음도 있었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인간은 음을 알고 이해하는데 10년은 걸리고

소리를 얻어 자유자재로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자면

한평생도 부족하다는데, 매미는 그 짧은 7일의 에서

득음과 지음을 다 이루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람은 기쁘거나 즐거운 일이 있어도

마음껏 다 즐기지 못하고 모두 다음으로 미룬다.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이 오면 하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다니 이 얼마나 허망하고 황당한 일인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맹목적으로 허둥대며 살다가

후회만 남기고 가는 게 보잘것없는 우리네 인생인가보다.

 

천 년을 산 거북이는 모든 걸 느림의 미학안에서 달관한 듯

세상에 바쁜 일이 없어 보인다.

느릿느릿 걸어도 제 갈 길 다 가고  제 할 일 다 하며

건강까지 지키니 천 년을 사나 보다.

 

그러니까 하루를 살던 천 년을 살던

허긴 모두가 일평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