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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 마종기

by 이첨지님 2024. 5. 8.
제목 없음

 

어느 날 문득 / 마종기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60년 넘긴 질긴 내 그림자가

팔 잘린 고목 하나를 키워놓았어

봄이 되면 어색하게 성긴 잎들을

눈 시린 가지 끝에 매달기도 하지만

한세월에 큰 벼락도 몇 개 맞아서

속살까지 검게 탄 서리 먹은 고목이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60년 넘은 힘 지친 잉어 한 마리

물살 빠른 강물 따라 헤엄치고 있었어

정말 헤엄을 치는 것이었을까

물살에 그냥 떠내려가는 것이었을까

결국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못한 채

잉어 한 마리 눈시울 붉히며 지나갔어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까

모두 그랬어, 어디로들 가는지

고목이나 잉어는 나를 알아보았을까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었인지도 모르고

뚝심이 없었던 젊은 하늘에서

며칠 내 그치지 않는 검은색 빗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