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겨울 문턱에서 / 황동규
대놓고 색기 부리던 단풍
땅에 내려 흙빛 되었다
개울에 들어간 녀석들은
찬 물빛 되었다
더 이상 뜨거운 눈물이 없어도 될 것 같다
눈 내리기 직전 단색의 하늘
잎이 벗어버린 나무들
곡식 거둬들인 빈 들판
마음보다 몸 쪽이 먼저 속을 비우는구나
산책길에서는 서리꽃 정교한 수정 조각들이
저녁 잡목 숲을 훤하게 만들고 있겠지
이제 곧 이름 아는 새들이
눈의 흰 살결 속을 날 것이다
이 세상 눈물보다 밝은 것이 더러 남아 있어야
마감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견딜 만한
한 생애가 그려 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