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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버들 가려 꺽어 - 홍 랑

by 이첨지님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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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버들 가려 꺽어
홍랑



묏버들 가려 꺽어 먼 곳 임께 보내오니

뜰앞에 심어 놓고 날마다 살펴보옵소서.

모름지기 밤 사이 새잎 난 것 보시거든

파리하고 수심에 찬 이 몸인 듯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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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 홍랑


선조 7(1574)에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으로 임명된 최경창이 서울을 떠나 병마절도사가 주재하고 있는 경성으로 가던 길에 홍원에 들려 묵게 되었습니다. 그때 관기 홍랑과 하룻밤을 같이 지냈는데 홍랑은 당시 최고의 시인이며 피리의 고수인 최경창에게 한눈에 반했고, 최경창 역시 거문고연주의 일인자인 홍랑에게 매료되었습니다. 다음날 최경창이 길을 나섰으나 홍랑은 관기(官妓)의 신분이라 최경창을 따라나설 수 없었습니다.
 

한 달 후, 홍랑은 천리 멀고 험한 길을 혼자서 걸어 경성의 최경창을 찾아왔고, 그들은 꿈속 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섯 달 남짓, 최경창은 조정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홍랑은 이별이 너무나도 애석하여 최경창을 따라 나서 경성에서 영흥까지 천 삼백리 길을 함께 걸었다. 그러나 영흥에서부터는 '양계의 금(여진족 침입을 막기위해 함경도 사람은 이 도계를 넘어 평안도로 갈 수 없는 법령)' 에 의해 더 이상 따라 갈 수 없게 되었다.
 

홍랑이 사랑하는 임을 눈물로 보내고 귀가하는 길에 함관령(함흥과 홍원 간 고개)에 이르자 날이 저물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홍랑은 복받치는 슬픔에 길가의 묏버들 가지를 꺽으며 시조 한 수를 읊었다. 묏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 임의 손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옵소서/ 밤비에 새잎이 나면 이 몸이라 여기소서
 

뒷날 홍랑은 이 시조와 버들가지를 최경창에게 보냈고 최경창은 이를 한시로 옮겼다. 그리고 3년 후 홍랑은 최경창이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길은 달려 항양의 최경창 집으로 와 병구완을 하였고 최경창은 회복하였다.그러나 최경창은 사헌부로부터 명종의 국상중에 한양출입이 금지된 북방의 기생을 불러들였다는 죄로 탄핵받아 파직되었고 홍랑은 다시 홍원으로 돌아갔다. 그 후 최경창은 복직되어 중성부사를 지내는 등 북쪽 변방을 오랫동안 전전하다 성균관 직강 발령을 받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왕십리 부근에서 객사하였다. 홍랑은 최경창의 부음을 듣고 달려와 사내들이 넘보지 못하게 얼굴을 흉하게 훼손한 뒤 초경창의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삼년간 시묘를 살았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창의 유작과 유품을 정리해 종적을 감추었다 그로부터 7년 후 임진왜란이 끝나자 홍랑은 해주최씨 문중을 찾아와 최경창의 유작과 유품을 돌려준 뒤 최경창의 묘 앞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해주최씨 문중에서는 홍랑을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아래 장사지내 주었다.